에필로그 어떤 공주의 한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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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악역 영애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너와의 약혼을 파기하고 싶어.”최근 서먹서먹했던 약혼자에게 불려 학원 안에서도 사람이 별로 없는 정자에 갔더니 가장 처음으로 그런 말을 들어, 금발의 소녀는 언제나 유지했던 미소를 한순간 잊을 뻔했다.눈앞의 약혼자는 등 뒤로 핑크 블론드의 소녀를 감싸면서도 이쪽의 모습을 살피고 있다. 한 살 위의 약혼자를, 소녀는 미소를 띤 채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이전부터 우유부단하고 휩쓸리기 쉬운 타입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여기까지 저지를 줄은, 이 솔직한 감상이다.우선 가장 걸리는 부분을 입 밖으로 꺼내 보았다.“파기, 인가요.”“그래……. 나는 진실한 사랑을 만나고 말았어. 너와의 약혼을 파기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약혼자는 그렇게 말하고 분홍색 머리 소녀의 등에 손을 얹었다. 소녀는 수줍..
수습 성녀 아이니 미콜라의 소원 (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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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악역 영애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왕립 학원에는 멋진 사람이 잔뜩 있었다.시골 남작의 사생아인 아이니는 말도 걸지 못할 사람도, 아이니가 말을 걸면 처음엔 당황하지만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단지 고위 귀족의 아들은 약혼자가 정해져 있는 사람이 많아, 자주 그 약혼자나 친구 같은 여성에게 혼났다.그 중에서도 에릭의 호위 역할을 맡은 오르바의 약혼자, 산드라 알디니의 말투는 힘들었다.늘 금색 머리를 곱게 말아 볼 때마다 다른 머리 장식을 하고 있는 2학년 학생으로, 그녀의 주위에는 똑같이 예쁘게 차려입은 여학생이 많았다.“몇 번 말해야 이해해 주실까요?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은 학원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예요. 분수를 알고 행동하세요.”아이니는 예쁘게 차려입은 산드라에게 약간의 동경도 품었지만, 이렇게 자주 얕보는 말투를 듣는 것은 싫었다...
수습 성녀 아이니 미콜라의 소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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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악역 영애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후작가…… 메리칸트 후작의 저택은 미콜라 남작가보다 두 배는 컸다. 인테리어도 남작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호화로워, 아이니는 부지런히 둘러 보았다.아이니를 이곳까지 데려온 교회 사람들로부터 후작에게 인도받아, 그로부터 후작가의 가족을 소개받았다.딸 베르나데타는 두 살 위답게 왕립 학원의 선배기도 해서 학원의 예절 등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은빛 머리에 붉은 빛이 오는 분홍색 눈동자의 미인이지만, 눈을 자주 내리깔고 왠지 마음도 약한 것 같다. 아이니의 이복 언니들은 남작의 딸이라고 으스댔는데 후작가의 딸이어도 심약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반대로 아들인 사우리는 후작과 같은 은발에 파란 눈으로,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이니의 또래인 모양으로 좀 가치를 매기는 눈으로 자신을 보았지만..
수습 성녀 아이니 미콜라의 소원 (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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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악역 영애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철이 들었을 무렵 자신은 가벼운 존재라고 느꼈다. 아이니는 벽지의 영주로 있는 남작 저택의 하녀의 딸로 태어났다.어렸을 때는 같은 하인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고, 그 부모인 하인들은 멀리서 소곤댔다.남작 부인, 아가씨나 도련님에게는 자주 눈총을 받거나 발이 걸리거나 해서, 어째서 이런 일을 당하는 거냐고 어머니에게 울부짖어도 어머니는 미안하다고 말할 뿐이었다. 얼마 후, 자신이 남작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그것도 일단 남작가의 피를 이었으니 최소한의 교육을 시작한다고 갑자기 들었기 때문이다.“너는 모친을 닮아 귀엽게 생겼구나. 조만간 지방 귀족이나 상인에게 시집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아버지라는 남작은 그렇게 말하며 아이니에게 가정교사를 붙여 주고 예의범절과 기초적인 공부를 배우게 했다.그때..
자작 영식 제럴드 마켈라이넨의 결심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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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악역 영애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고등부에 진학한 오르바는 여전히 기사 일변도였지만 기사로서의 역량은 있었던 듯, 한 살 어린 왕세자의 학원 안 호위로 지명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본인도 수업이 있으니 수습 호위로서 쉬는 시간 등을 함께 하는 정도지만.그래도 형도 아버지도 명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제럴드는 내심 산드라의 부담이 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수준이 아닌 일이 벌어졌다. 오르바가 3학년, 산드라가 2학년, 제럴드는 중등부 2학년이 되었을 무렵, 왕립 학원이, 아니 귀족계가 떠들썩해졌다.‘성녀’가 나타난 것이다.정확히는, ‘수습’ 성녀.성녀는 빛 마법에 눈을 뜬 여성을 말한다.이 나라에서 마법이라고 하면 기적에 가까우며,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다.그 중에서도 빛 마법은 ‘정화’나 ‘진정’의 힘이 있다. 이 나라에..
자작 영식 제럴드 마켈라이넨의 결심 (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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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악역 영애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넌 정말 연약하구나.”“이렇게 몸이 약해서는, 장래가 걱정이야.”“마켈라이넨 가문은 모두 튼튼할 텐데.”제럴드 마켈라이넨은 선천적으로 호흡기관이 약했다. 운동을 하면 금방 숨이 가빠지고, 몸도 작고 허약했다.그것뿐이라면 점점 성장하며 건강해질 테니 신경 쓸 일이 아니었겠지만, 제럴드의 가문인 마켈라이넨 자작가는 영지가 있는 귀족으로서는 드물게 기사를 많이 배출하는 가문이었다.마켈라이넨 가문의 남자들은 대부분 체구가 크고 힘도 셌기 때문에 제럴드의 존재는 눈에 띄었다. 어머니는 걱정했고, 아버지는 마켈라이넨 가문에 허약 체질은 없다며 자신의 탓이라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친척도 모두 건강했기 때문에 대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네 살 터울인 형 오르바와 비교받았다.오르바는 마켈라이넨가의 남자를 그림으로 그린..
후작 영식 사우리 메리칸트의 기억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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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악역 영애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아이니가 편입해 왔다.한 발 앞서 왕립 학원에 입학한 사우리는,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그 이후 베르나데타의 학습 시간에는 사우리가 거리로 데리고 나갔지만, 아이니의 학습 시간은 기본적으로 스케줄이 꽉 차 있다. 같은 저택에 살고 있는데도 자유롭게 대화할 시간이 그다지 없었다.하지만 학원이라면 같은 학년에 수업도 함께, 점심도 방과 후에도 함께 있을 수 있다. “사우리 군!”교사가 나가자마자 아이니가 사우리에게 웃는 얼굴로 달려왔다. 같이 등교했지만 편입생인 아이니는 따로 행동했기 때문에 불안했던 모양이다.학원에서 교복 차림의 아이니를 보아도, 역시 아이니는 유달리 사랑스러웠다.후작가 적자인 사우리는 어렵게 생각하는 클래스메이트들도 아이니의 친근함과 귀여움에 이끌려 왔다. 그래도 아이니의 특별한 사람은 ..
후작 영식 사우리 메리칸트의 기억 (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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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악역 영애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당신은 언젠가 후작이 되는 거예요.”어릴 적부터 어머니께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다. 사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다만 한 가지, 아버지에게는 이미 정략결혼으로 결혼한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와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못했다.자작가의 넷째 딸인 어머니보다도 신분이 높은 백작가의 아가씨였기 때문에 파혼할 수도 없었다. 사우리는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하고, 원망하지도 않았다.애초에 아버지는 사우리와 어머니에게 저택을 사 주고 자주 그 집에 머물렀으니 특별히 불만도 없었다.그래도 아버지가 집을 비운 동안에는 어머니가 외로워하시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것도 사우리가 3살이 되었을 때 해결되었다.몸이 약했던 아버지의 정처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장례 후 한 달의 애도 기간이 끝나자마..
재상의 영양 베르나데타 메리칸트의 경우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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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악역 영애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대는 총명하고 기품이 넘치는 정숙한 여인입니다. 답은 서두르지 마세요. 그대가 그대로서 남을 수 있는 곳을, 제가 만들게 해 주세요.”“바, 발리에 공자…….”“부디 뤼시앵이라고……. 베르나데타 양.”진지한 눈으로 이름을 부르며, 뤼시앵은 베르나데타의 손등에 입맞췄다. ‘구, 구혼을 받고 말았어요!’그 후 어떻게 저택까지 갔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베르나데타는 평소에는 절대로 하지 않는 일을 했다. 교복을 입은 채 침대에 쓰러진 것이다.‘구혼……. 내가 구혼을……?!’게다가 상대는 이웃 나라의 공자인 뤼시앵이다.장신에 온화하고 상냥하며, 무엇보다 베르나데타와 대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귀중한 상대.상대가 이웃 나라의 공작가라면, 삼남이라고는 하나 이웃 나라와의 국교를 공교히 하고 싶을 아버지는 아..
재상의 영양 베르나데타 메리칸트의 경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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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악역 영애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과 이야기하면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그게 ‘위화감’이라는 것을 알고, 그 이유도 서서히 이해했다.그렇다고는 해도, 그것을 이해하기까지 몇번이나 실패를 반복했다.다섯 살 때 생긴 동생이 이것저것 가르쳐달라고 해서, 베르나데타가 세 살 때 마음에 들었던 책을 들려 주었더니 동생은 흐느껴 울었고 계모가 나와 “이 무슨 기분 나쁜 애야!” 라며 베르나데타를 욕했다.그 후에도 몇 번 시도해 봤지만 사우리는 베르나데타의 말에 눈만 희번덕거릴 뿐. 그러다 베르나데타를 보기만 해도 얼굴을 찡그리게 됐다.또한 베르나데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작위는 아래지만 역사가 있는 백작가의 둘째 아들로, 세 살 연상인 그와는 일곱살 때 만나게 되었다. 이미 초등부에 다니고 있다는 연상의 약혼자가 눈부셔서 열심히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