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언젠가 후작이 되는 거예요.”
어릴 적부터 어머니께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다.
사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만 한 가지, 아버지에게는 이미 정략결혼으로 결혼한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와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못했다.
자작가의 넷째 딸인 어머니보다도 신분이 높은 백작가의 아가씨였기 때문에 파혼할 수도 없었다. 사우리는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하고, 원망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아버지는 사우리와 어머니에게 저택을 사 주고 자주 그 집에 머물렀으니 특별히 불만도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집을 비운 동안에는 어머니가 외로워하시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것도 사우리가 3살이 되었을 때 해결되었다.
몸이 약했던 아버지의 정처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장례 후 한 달의 애도 기간이 끝나자마자 아버지는 어머니와 사우리를 본가로 데리고 왔다.
아버지인 메리칸트 후작가에는 전처의 딸이 한 명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남자인 사우리가 대를 잇게 될 것이라고 모두가 받아들였다.
특히 어머니는 첩에서 정처가 된 일로 건강해져, 기운 좋게 저택의 안주인으로서 분투했다.
두 살 위인 이복 누이, 전처의 딸인 베르나데타는 조용한 소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아버지가 바로 후처와 이복 동생을 데려왔으니, 다섯 살짜리 아이라면 짜증이 날 정도였을 텐데 사우리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었다.
베르나데타는 조용한 누나였다.
그러나, 무서운 누나였다.
어릴 적의 기억이라 애매하지만 사우리에게는 베르나데타와 밖에서 놀았던 기억이 없다.
생각나는 것은, 베르나데타가 어두운 방에서 무겁고 큰 물건을 안고 온 일. 길고 주문 같은 말. 어머니의 히스테릭한 외침.
어머니가 방에서 데리고 나올 때 돌아 봤던 순간, 어두운 방에 홀로 있는 베르나데타의 딸기 같은 눈동자가 어렴풋이 빛나 보였던 것.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베르나데타와 둘이 있던 기억은 없다.
어머니의 말을 듣기로는, 베르나데타는 어린 사우리에게 심술궂게 무서운 책을 읽어 주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전처의 아이인 베르나데타를 싫어하는 것은 알았고, 새로운 안주인인 어머니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인들도 베르나데타의 아군이 되어 주지 않았다.
베르나데타는 조용하고 고압적인 태도도 없었기 때문에 하인들은 점점 베르나데타를 얕보기 시작한 모양이다. 귀염성도 없으니 부친에게서 귀여움을 받던 기색도 없다.
단 한 번, 베르나데타가 초등부에 들어가기 전, 분명 사우리가 여섯 살쯤 되었을 무렵이다. 밤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 아버지의 서재에서 불빛과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어, 가까이 다가갔을 때 보았다.
조용히 이야기하는 아버지와 그것에 기쁜 듯 얼굴을 빛내는 베르나데타가 여러 질문을 하던 것을.
그렇게 즐거운 듯이, 잔뜩 이야기하는 베르나데타는 본 적이 없어서 놀랐다.
……아니, 기억의 한구석에, 전에도 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희귀한 일을 보았다고 생각해, 사우리는 방으로 돌아가 그대로 자고 다음날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어머니는 안색을 바꾸고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오늘부터 베르나데타는 서재 출입을 금지한다.”
대신 사우리가 식사와 목욕을 마친 후 아버지의 서재에 가라는 말을 들었다. 후계자 교육을 위해서라는 말에 어머니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열심히 하세요.” 라고 했다.
이 무렵 사우리에게는 가정교사가 있었고, 그 교사들에게도 ‘우수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순전히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 시간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니 우월감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아주 조금은, 그 시절의 즐거운 듯한 베르나데타의 미소가 떠올라 가슴이 내려앉았다.
여덟 살, 초등부에 들어가도 사우리의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반면 베르나데타는 평균에서 조금 위 정도였다. 예의범절에 관해서는 우수한 편이었지만, 멀리서 보면 학원 안에서도 말수가 적어 쉽게 고개를 숙이고, 친구도 적은 것 같았다.
다만 1왕자의 약혼자인 퍼시발타 후작 영애와는 사이가 좋은 모양이었다.
그에 관해서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다른 파벌을 만들라고 주의를 받았다.
후작이 되는 것은 사우리지만, 그는 베르나데타가 조금 더 후작가의 딸로서의 행동거지를 제대로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베르나데타와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다.
사우리에게는 약혼자가 없었다.
이것은 어머니의 뜻이었다.
아버지와 어버니는 왕립 학원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체념하고, 어른이 되어 야회에서 재회에 맺어졌다고 들었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학창 시절 운명의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아버지의 권유를 거절하고 사우리에게 자유롭게 연애를 해 달라고 말했다.
사우리는 기본적으로 연애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등부로 진학하기 얼마 전, 아이니가 왔다.
* * *
“아이니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핑크블론드의 푹신한 머리카락에, 헤이즐 색의 반짝반짝하고 큰 눈망울.
왜소한 체구로 밝게 웃는 아이니는, 사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어떤 영애와도 달랐다.
아이니는 사우리과 같은 나이로, 원래는 시골 남작가의 사생아였지만 빛 마법의 힘에 눈을 떠 성녀가 되기 위해 왕립 학원에 편입하기로 했다.
남작가에서는 하인과 같은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최소한의 학습밖에 하지 못했고, 고등부의 수업을 따라가기엔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반년간 후견인이 된 메리칸트가에서 배우게 되었다.
음침한 베르나데타와 정반대인 아이니에게 사우리는 금세 호의를 품었다.
베르나데타는 어릴 때부터 키가 크고 두 살이나 차이가 나 최근에야 겨우 추월한 데 비해, 아이니는 키가 작아 사우리의 눈높이에 정수리가 닿을 정도인 것도 좋다. 그래서 아이니는 항상 사우리를 올려다보며 생글 꽃처럼 웃는다.
“내 손, 굳은살이 배겨서 못생겼지……. 벨 씨처럼 예쁜 영애의 손이 아니니까…….”
아이니는 하인의 딸로 태어나, 하인과 똑같이 취사나 청소를 했다고 한다. 그 탓에 손에 흉터가 몇 개 남아 있었지만 사우리에게는 사랑스러운 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 일을 해 온 멋진 손이야.”
그렇게 말하며 꽃 향기가 나는 핸드 크림과 분홍색 매니큐어를 선물했더니 기뻐해 주었다.
그러나 아이니는 마법 교사와 공부 교사, 그리고 예절 교사와 베르나데타에게 수업을 받고 있어 사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좀처럼 없었다. 학원에 관한 일이라면 사우리가 가르칠 수 있는데, 같은 여성이라고 아버지는 베르나데타에게 지시했다.
그래도 다른 교사보다는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베르나데타의 시간을 노려 아이니를 만나러 갔다. 아이니도 사우리의 얼굴을 보자 반가워했고, 사우리는 베르나데타의 수업에 끼어들게 되었다.
“으……. 어려워요오…….”
그날도 베르나데타가 아이니에게 예절을 가르치고 있었다.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교사는 따로 있지만, 학원 안에서의 행동거지를 논하자면 아무래도 예절을 공부하게 된다.
“아니에요, 아이니 씨. 그 자리에서가 아니라 전체 흐름을 기억하고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런 말을 해도,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어지러워요.”
“누님, 그런 주입식 학습으로는 기억할 수 없습니다.”
아까부터 각 귀족 집안을 설명하고 작위에 대한 예절을 늘어놓을 뿐, 그런 것으로 기억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아이니는 하인 일을 하며 최소한의 공부밖에 하지 못했다고 하니까.
“맞아요. 이렇게 이름이 비슷한 귀족들은 종이를 보는 것만으로는 기억할 수 없어요.”
“하지만 학원 안에 재적하고 계신 분들의 가문을 적어 두었으니, 반드시 기억해야 해요.”
“벨 씨는 전부 기억하고 있나요?”
“네.”
누님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사우리는 막상 그 누님의 성적이 별로 좋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님은 초등부부터 서서히 익혔잖아요. 아이니에게 이 기간 동안 다 외우라고 하는 것과는 달라요.”
“그렇긴 하지만, 한 달이나 있는데 외울 수 없나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는 베르나데타가, 본인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초조해졌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다니, 괴롭힘이 아닌가.
아이니는 분명 남작가의 사생아이고, 베르나데타는 후작가와 유서 깊은 백작가의 딸이지만 그렇다고 깔봐도 될 리 없다. 애초에 아이니는 성녀가 되니 고위 귀족과 동등한 지위를 받게 되는데, 그걸 모르는 것일까.
“저는 지난 시험에도 학년 상위였지만 누님은 학원 성적도 딱히 좋지 않잖아요. 본인이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떠넘기지 마세요.”
“아, 그래요? 벨 씨는 성적이 좋은 줄 알았어요.”
아이니는 베르나데타의 괴롭히는 발언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만큼 지금까지 고생을 해 온 거겠지.
하지만 베르나데타의 발언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아이니가 밖으로 나가 실제로 공부하자고 말을 꺼내, 사우리도 아이니는 몸을 움직여야 기억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찬성했다. 하지만 베르나데타가 그것에 난색을 표하며 눈가를 찡그렸다.
“아니……. 기초도 되어 있지 않은데, 밖에 나가서 뭘 얻는다는 건가요……?”
말은 정중하지만 내려다보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사우리도 얼굴을 찡그렸다.
“그거. 누님은 잘도 그렇게 남을 깔보는 눈을 합니다. 머리도 안 좋은데 그런 건 어떨까 싶네요, 정말.”
이 누님은, 얌전한 척을 하면서 가끔 이렇게 얕보는 듯한 기분 나쁜 말투를 쓴다.
성적은 사우리가 좋고 후작가의 대를 잇기 위한 교육도 받고 있으니, 사우리가 더 위에 있는 입장일 텐데 그런 사우리에게까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아마 학원 안에서도 비슷하게 말했겠지.
그리고 남작가의 사생아라며, 특히 아이니에게 그런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이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우리는 베르나데타의 수업에 동석하고 있던 것이다.
눈가를 찡그리며 입을 다물고 있는 음침한 누님과 정반대인 아이니는, 베르나데타의 깔보는 발언에도 아랑곳 않고 사랑스러운 얼굴로 생긋 웃으며 베르나데타가 가장 먼저 가르친 귀족의 예를 보였다.
“괜찮아요, 벨 씨! 이렇게죠?”
어디까지나 순수하고, 순진하고, 긍정적인 아이니.
반면 누님은 감정이 적은 눈으로 아이니를 내려다보며, 쏘아붙였다.
“왜 그런 것도 할 수 없어요?”
사우리는 충격을 받은 아이니를 거리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진심으로 누나를 경멸했다.
노력하고 있는 아이니를, 자신의 입장도 능력도 생각하지 않고 괴롭히기만 하다니.
‘아이니는 내가 지켜야 해…….’
그것이 메리칸트가 적자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자신의 사명이라고 사우리는 강하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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