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영애 산드라 알디니의 경우 (前)
적색, 청색, 녹색, 형형색색의 리본을 나열한다.
학원에서 착용할 수 있는 장식품은 머리 장식 정도이기 때문에, 매일 아침 하는 리본 선택은 중요한 의식이다.
단단히 감은 세로롤에 빗대어 보며, 산드라는 남색에 금색 자수가 들어간 리본을 집어 들었다.
“어머, 산드라 님. 멋진 리본이네요.”
클래스메이트의 눈치 빠른 영애가 칭찬하자 산드라는 의기양양하게 리본이 달린 자신의 금발을 쓸었다. 오늘의 산드라는 위는 땋아 묶고 뒷머리는 아래쪽으로 땋은 머리를 리본으로 묶고 있다.
“네, 예쁘지요? 탈리티니로 짠 원단으로 만들었어요. 광택도 훌륭하고 자수실도 빛난답니다.”
“탈리티니 천이요?! 질이 몹시 좋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없죠?”
다른 영애의 질문에 산드라의 미소가 깊어졌다.
“네, 아버님의 상회에서 취급하게 되었어요. 지금 판로를 마련하고 있으니, 여러분도 곧 손에 넣으실 수 있을 거예요.”
“어머, 기대되네요.”
“저는 지금 드레스도 만들고 있답니다. 틸겔 백작 부인이 개최하시는 가든 파티에 입고 갈 수 있도록 서두르고 있어요.”
“틸겔 백작 부인의 가든 파티에 초대받으신 건가요!”
“부럽네요.”
틸겔 백작가는 산드라의 가문인 알디니 자작가와 마찬가지로 장사로 성공한 귀족이다. 부인도 정력적으로 여성을 위한 장사를 하고 있어, 영애들은 그녀가 프로듀싱하는 액세서리류를 동경하고 있었다.
꺄아꺄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도중, 영애 중 한 명이 산드라에게 질문하려고 손을 들었을 때 퍽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났다. 그쪽을 바라보니, 핑크블론드의 얼굴이 보였다.
“어머, 미안해요.”
“아파라…….”
영애가 올린 손이 바로 뒤에서 오던 이 핑크블론드의 소녀, 수습 성녀 아이니의 손과 부딪힌 것이다.
손을 누르고 고개를 숙이는 아이니에게 붉은 머리의 남성이 달려왔다.
“괜찮냐, 아이니?!”
다름 아닌, 산드라의 약혼자 오르바 마켈라이넨이었다.
“다쳤나? 아파?”
“오르바 님……. 괜찮아요.”
반복한다.
이 수습 성녀의 어깨를 안고 걱정스럽게 표정을 살피고 있는 남자는, 산드라의 약혼자인 오르바 마켈라이넨이다.
“하아……. 엄살은. 괜찮으시다면 언제까지나 고개를 숙이고 계시지 말고, 어서 떠나 주시겠어요?”
산드라가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자 오르바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다만, 그 눈에 깃든 것은 약혼자에 대한 감정은 도무지 아니었다.
“아이니를 다치게 해놓고선 그게 무슨 말투야!”
“다치다니, 거창하게……. 살짝 손이 닿아서 빨개진 것뿐이죠?”
실제로 영애는 가볍게 손을 들었을 뿐이고, 그것에 맞은 것은 손등이니 잘못 부딪혔을 리도 없었다. 부딪힌 게 산드라라면 다쳤다는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가해자의 대사인가! 사과도 하지 않다니, 일부러 그러는 건가?!”
“밖에서 이 무슨 큰 소리인가요. 제대로 사과했어요. 그렇지요.”
사실 가해자라고 불려야 할 사람은 산드라가 아니라 다른 영애인데도 오르바는 마치 산드라가 나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산드라는 손이 부딪힌 영애에게 동의를 구했다.
“네에……. 제대로 사과했어요.”
“……흥. 어차피 입을 맞추고 있을 뿐이겠지. 복도에서 장식품 얘기만 하고, 뭐 하러 학원에 와 있는 거야? 가자, 아이니. 보건실에 가 보는 게 좋겠어.”
오르바의 너무한 말투에 산드라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혼자 말하고 도망치게 둘 생각은 없다. 당하면 이자를 붙여서 갚는다. 그것이 산드라의 방침이었다.
“어머나, 그쪽이야말로 아침부터 밤까지 검을 휘두르기만 하는 생활이라고 마켈라이넨 가문의 하인이 한탄하던데요? 올해 졸업인데도, 이래서야 영지 운영에 종사할 수 있겠냐고.”
“뭐……!”
오르바의 가문인 마켈라이넨 자작가는 역사가 깊고 대대로 기사로 서임되었지만, 동시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귀족이었다. 그러므로 장남인 오르바는 머지않아 가문을 잇게 된다.
그런데 이 오르바는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오로지 검의 길 일직선으로, 그 외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셈이 빠르고 사교계에 밝은 산드라가 약혼자가 되었다.
“게다가 사람들 앞에서, 아니, 약혼자의 눈앞에서 다른 여성의 어깨를 안는다니……. 마켈라이넨 자작 부인이 아시면 무척 놀라실 거예요. 그 분은 성실하지 못한 남성은 용서하지 않으시니까요.”
마켈라이넨 자작 부인, 즉 오르바의 어머니는 이전에 남편인 마켈라이넨 자작이 밖에 애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야말로 대단한 서슬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일을 암암리에 시사하자 오르바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말문이 막힌 약혼자를 내버려 두고 산드라는 화살을 아이니에게 돌렸다.
“당신도 몇 번 말해야 알아듣죠? 적령기의 숙녀는 약혼자가 있는 남성을 함부로 만지거나, 만지게 두지 않는 법이에요. 상스러워요.”
“그런……. 오르바 님은 절 걱정해 주셨을 뿐인데, 상스럽다니…….”
아이니가 헤이즐색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글썽이며 결사적으로 대답하는 것을 산드라는 감정 없는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 보았다.
산드라는 이 수습 성녀를 정말 싫어한다.
성녀가 교회의 상층부에 위치하는 존재인 것도, 고위 귀족과 동등한 지위라는 것도 알고 있다.
태생이나 성장 과정이 천박해서가 아니다. 이 여자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무례’하고 ‘빈상’하고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니가 왕립 학원에 편입해 온 것은 반년 전이었다.
그 전의 반년 동안 후견인이 된 메리칸트 후작가에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거칠고 예절을 모르는 아이였다.
교육이 늦되었나 싶어서 눈에 거슬리는 행동에 주의를 줬는데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게다가 약혼자가 있는 고위 귀족의 자제를 중심으로 다가가, 마치 학원의 중심 같은 얼굴을 한다.
말도 안 된다. 이 학원의 여왕은, 왕세자 전하의 약혼자이신 세라피나 님 한 분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 예의 없는 사람은 왕세자에게까지 친근하게 다가갔다.
있을 수 없다. 괘씸한 사람. 더럽다.
“맞아! 우린 떳떳하지 못한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시시콜콜 파고들기만 하니까 귀족 사회는 싫어. 그에 비해 아이니는 순진해서 마음이 씻겨지지.”
그리고 약혼자의 이 태도이다.
산드라에게 싫어하지 말라고 말하는 편이 불가능하다.
“하. 이제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약혼자의 임무는 완수하세요. 이번 주말 틸겔 백작 부인의 가든 파티는 기억하고 계시죠?”
약혼자 동행이 권장되고 있고, 오르바는 올해 졸업이다. 조금이라도 얼굴을 알려 두는 편이 좋았다.
코웃음을 치는 산드라의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오르바는 “알아.” 라며 아이니를 데리고 보건실로 향했다. 저 손을 보여 줘서, 보건 선생은 무엇을 하면 좋은 걸까.
“죄송합니다. 제가 손을 부딪혀서…….”
아이니와 오르바가 떠나는 것을 일별하고, 아이니와 손이 부딪힌 영애가 사과를 건넸다.
“신경 쓸 것 없어요. 저렇게 조금 부딪힌 정도로 호들갑을 떠는 게 이상해요.”
산드라의 말에 다른 영애들도 동참했다.
“정말로, 상처가 난 것도 아닌데 엄살이에요.”
“게다가……. 산드라 님 앞에서는 말하기 힘들지만, 오르바 님도 그건 아니죠.”
“뭐……. 성녀는 드무니까요. 기사도 정신이 강한 분이에요. 흥분하고 있는 거겠죠. 졸업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 조만간 안정될 거예요.”
옆에서 봐도 오르바의 언행이 이상한 건 알지만, 그걸 지원해야 하는 게 약혼자의 귀찮은 일이다.
“어머, 산드라 님은 관대하시네요.”
여차하면 오르바 같은 뇌근 따위, 얼마든지 입으로 이길 수 있고 마켈라이넨 자작가도 장악 완료했다. 산드라에게는 그것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다.
“그보다 세라피나 님이에요. 그 아가씨가 에릭 전하께도 접근하고 있다는데, 그걸 묵인하신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곧 졸업하는 오르바와 달리 세라피나도 에릭도 2학년이다. 즉 앞으로 1년 이상 그 수습 성녀와 같은 학원에 다니게 되는데, 지금의 상황을 타파할 생각은 없는 것일까.
교회와 왕실은 대립 관계까진 아니지만, 왕가를 따르는 귀족과 달리 별도로 교회를 지지하는 조직도 있다. 일부 친교회파 귀족들은 이를 계기로 왕가와 교회가 친밀해져야 한다고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오랜만에 성녀가 나타나자 완전히 들떠 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그게 진짜가 될 것 같은 분위기마저 나올 것 같다.
“그건 좀 불경스럽지 않나요, 산드라 님……”
세라피나를 비판하는 듯한 산드라의 말투에 다른 영애들이 조심스럽게 지적했지만, 산드라는 멈추지 않았다.
“아뇨. 세라피나 님은 차기 왕비로서 더욱 확고하게 존재를 어필해야 해요! 명문 후작가의 이름을 등에 업고 있는걸요. 당연한 의무입니다.”
차기 왕비는 세라피나 외에는 있을 수 없다.
그 무례한 계집을, 세라피나는 훈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녀에게 부과된 사명이니까.